대부분의 모임·행사 초대가 온라인 어플과 이메일로 이루어지는 요즘, 보통 사람들이 받는 실물 초대장은 청첩장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패션계 인사나 연예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들에게는 매 시즌 패션쇼 초대장이 배달되는데, 각각의 브랜드들은 이 초대장을 어떻게 구성할지 매번 심혈을 기울인다.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면서도 지루하거나 뻔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 초 설현이 구찌로부터 받은 초대장은 그 독특함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매번 패션쇼에 참석하는 패션지 에디터가 보기에도 역대급으로 특이했다는 구찌 초대장, 대체 어떤 모습이었던 걸까?


나무상자에 석고상, 구찌의 2019 FW 초대장

올봄 밀라노에서 치러진 구찌 2019 FW 컬렉션 초대장은 셀럽과 패션지 에디터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초대장’이라면 보통 생일카드 크기의 가벼운 종이 재질을 연상하게 마련인데, 쇼 참석 예정자들에게 배달된 것은 묵직한 나무 상자였다. 안에는 석고상 모양의 흰색 가면 하나가 충전재 위해 덜렁 놓여 있었다.

이 초대장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구찌 쇼에 초대받은 설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초대장 사진을 공개하며 “Thank you for inviting me gucci”라는 멘션을 남겨 팬들의 시선을 끌었고, <GQ>의 박나나 에디터는 ‘장갑 한 짝, 약병, 호밀빵 같은 별난 패션쇼 초대장을 다 받아봤지만, 이렇게 음산하고 섬뜩한 건 처음이었다.’며 이 초대장의 독특함을 강조했다.

그리스 신화 속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얼굴을 형상화한 이 가면 초대장은 ‘가면을 쓰고 벗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되는 인간의 양면성’이라는 구찌의 2019 FW 컬렉션 주제를 담고 있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사이에서 태어난, 양성구유의 신이다. 2017년 이후 남녀 컬렉션을 통합하고 젠더리스 룩을 주로 선보이는 구찌의 최근 행보와도 일맥상통한다.

구찌, 과거 경고 문구 삽입한 초대장 보내기도

사실 구찌가 남다른 패션쇼 초대장을 발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FW 컬렉션에서는 지퍼백에 담긴 디지털 카운터를 초대장으로 보냈다. 지퍼백의 한 면에는 ‘청소년 관람불가’ 혹은 ‘부모의 시청 지도 필요’를 뜻하는 ‘Parental Advisory’라는 문구가, 카운터 뒷면에는 경고판 디자인에 쇼가 열리는 시간과 장소가 기재되어 있었다.

쇼 당일 런웨이 위에서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았지만, 병원을 주제로 연출한 세트에서 모델들은 다소 기괴할 정도로 독특하고 화려한 룩을 선보였다. 몇몇 모델들은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본뜬 머리 모형을 들고 워킹하기도 했으니, 아이들이 보기에 너무 자극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동서남북부터 빔 프로젝터까지…역대급 독특한 초대장들

이렇게 독특한 초대장을 보내는 브랜드가 구찌뿐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겐조는 2010년 FW 쇼 초대장으로 비닐에 든 나뭇잎을 보냈고, 드리스 반 노튼은 2015년 SS 컬렉션을 위해 아크릴 상자에 담긴 이끼를 준비했다. 한국인들의 추억을 자극할만한 초대장도 있다. 2011년 멀버리 FW 쇼 초대장은 어릴 때 다들 한 번쯤 색종이로 접어보았을 ‘동서남북’형태였다. 이 초대장 디자인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많은 이들이 청첩장, 생일 초대장 제작에도 참고한다는 소식이다.

메종 마르틴 마르지엘라도 빼놓을 수 없다. 2012년 쇼 참석 예정자들에게는 건전지 모양의 열쇠고리가 하나씩 배달되었는데, 이 물건의 정체는 흰 벽을 향해 버튼을 누르면 패션쇼 장소와 시간을 표시해주는 미니 빔 프로젝터였다.

2020 SS 초대장은 어떨까

그렇다면 가장 최근, 2020 SS 컬렉션의 초대장 디자인은 어땠을까? 제니퍼 로페즈의 과감한 그린 드레스로 주목을 받았던 베르사체는 한손 크기의 풀립 북을 제작했다. 책을 빠르게 넘기면 구글의 검색창 안에 ‘Versace womenswear SS 2020’이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N °21은 하늘하늘한 스킨 컬러의 팬티를, 버버리는 곱게 짠 레이스 손수건을 초대장으로 보내 주목을 받았다. 페라가모는 종이로 만든 바구니를 하나씩 배달했는데, 안에는 이탈리의 비스킷 ‘칸투치’가 들어있어 바쁜 쇼 일정으로 끼니를 거르기 쉬운 패션 피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