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더더기 없고 조용한, 옆에 놓인 다른 가구와 조화를 이루는 것만이 존재의 이유인 듯한 가구들이 사랑받는 시대지만, 우아한 화려함과 역사를 지닌 자개장을 본다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나 보던 자개장에 현대성을 불어넣은 류지안 디자이너는 “공예가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계 주요 귀빈들의 의전 선물로도 인기가 높다는 그의 브랜드 ‘아리지안’은 어떻게 현대인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을까?


아름다운 빛을 새기다, 아리지안의 탄생

류지안 디자이너는 뉴욕의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비주얼 프레젠테이션과 전시 디자인을,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했다. 유학 시절 한 전시회에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진 일본 공예품을 마주하면서 한국적 디자인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됐다는 그는, 귀국 후 자개를 다루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아리지안’을 시작한다. 뉴욕에서 마주친 일본의 공예품이 어릴 적 아버지가 하던 나전칠기 사업에 대한 기억과 맞물려 한국 전통 공예 브랜드 론칭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리지안은 ‘아름다운 빛을 새기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옻칠한 기물에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감입해 빛을 발하는 나전칠기 기법과 제법 잘 어울리는 브랜드 이름이다.


국빈급 선물로 사랑받는 전통공예품

아리지안은 칠기 공예 전문가이자 마키에 기법을 국내 칠기 제품에 도입한 유철현 명인의 ‘청봉옻칠공방’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나전칠기와 옻칠공예의 명맥을 이어가며 전통적인 자개장롱을 주력 제품으로 삼았던 청봉옻칠공방은 아파트 형태의 주거와 함께 붙박이장이 늘어나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때부터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기념품이나 선물로도 적합한 공예 소품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전통 공예에 현대적인 터치를 가미해줄 아리지안과의 협업이 이루어졌다.

인사동에만 나가도 한국 전통의 모습을 한 소품들이 즐비하지만, 사실 이들 제품의 대부분은 ‘메이드 인 차이나’다. 외국인이 저렴한 가격에 한국을 추억할 물건을 사 가려는 목적에는 부합할지 몰라도 ‘우리의 전통 공예’라며 외국인에게 소개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유철현 명인과 류지안 디자이너는 나전칠기·칠화·건칠 등 전통 기법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한 함·찻잔·데스크 세트 등을 탄생시켰고, 아리지안의 공예품들은 엘리자베스 2세, 시진핑, 올랑드, 푸틴 등 국빈들의 선물로 선택되었다.

생활용품에 스며든 전통 공예

국가 정상이나 해외 명사들에게 한국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힘쓰는 동시에, 아리지안은 생활 속에 파고들 수 있는 공예품을 만들고자 한다. 공예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실용성인데 값이 비싸 관상용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아리지안은 옻칠 수저, 나무 그릇, 뒤집개와 밀폐 옹기 등 생활 용도품도 만든다. 6천 원에서 10만 원 사이의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공예품은 비싸다’는 선입견을 깨주기에 충분한 가격이다. 저렴하다고 대충 만든 물건은 아니다. 좋은 나무를 섬세하게 깎아 만든 정성과 전통 옻칠 기법을 고수한 점은 다른 고가의 공예품들과 다르지 않다. 특히 옹기와 옻칠공예가 만난 ‘원목 옻칠 밀폐 찬기·옹기’는 음식의 발효와 자연 숙성을 돕는 옹기의 특성에 아름다운 디자인, 냉장고에 포개어 넣기에 무리가 없는 실용성을 두루 갖춘 점이 훌륭하다.

추억까지 담은 리폼 자개장

한국 사람들은 이제 자개장뿐 아니라 ‘장롱’이라는 가구 자체를 잘 사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대부분의 주거 시설에 붙박이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리지안은 사이드바나 캐비넷, 콘솔 등의 비교적 부피가 작은 가구들을 선보인다. 한국형 아파트에도 무리없이 어우러지는, 더 나아가 단조로운 아파트 인테리어에 포인트가 되어줄 아름다운 자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제품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한국인의 생활에서 퇴출 위기에 놓인 장롱, 그중에서도 자개장롱을 현대의 주거형태에 잘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물건을 조금 더 쓸모 있게 만드는 단순 리폼과는 조금 다르다. 아리지안의 ‘타임리스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시간을 건너뛰는 자개장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전달하는 동시에, 소유주의 개인적인 추억까지 소중하게 담아두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유품이었던 자개장롱을 사이드보드와 캐비닛, 병풍으로 리폼해 삼 남매가 나누어 가진 이야기가 그 한 예다. 어머니의 옛 장롱은 장인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인테리어 소품이자 실용적인 가구, 어머니의 추억을 나누어 간직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최근 아리지안은 화가 정직성과도 협업했다. 정직성 작가가 제주의 현무암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에 나전칠기와 옻칠 기법을 접목해 ‘자개 회화’를 완성한 것이다. 나전칠기가 쇠퇴해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한다고 한탄만 하는 대신 실용적인 주방용품에서 의미 있는 기념품, 부모님과의 추억이 담긴 가구에 이어 순수미술의 영역까지 전통 공예의 외연을 확장해온 아리지안, 그리고 청봉옻칠공방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