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3년간 나이키의 공동창업자인 필 나이트(Phil Knight)는 대학원생 시절 꿈꿔왔던 비전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를 키워냈습니다. 또한, 세계에서 15번째 부자 반열에 오른 그는 총 244억달러 (약 28조1,000억원)의 재산으로 자수성가를 이뤄낸 인물이기도 하죠.

비록 나이트는 2015년에 나이키 명예회장직을 내려 놓았지만 반세기 가량 지켜온 그의 유산과 존재감은 지금까지도 나이키 브랜드 곳곳에서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다음은 나이키를 세계 최고 브랜드로 키운 ‘자수성가 억만장자’ 필 나이트의 혁신적인 운영과 도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38년 2월 24일 미국 오리건 주에서 태어난 필 나이트는 1959년, 오리건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로 졸업하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는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크게 활약했죠. 그는 스탠포드 대학원 시절, 육상팀 코치였던 빌 바워맨(Bill Bowerman)과 함께 각각 500달러를 투자해 ‘블루리본 스포츠’ (Blue Ribbon Sports)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당시 블루리본 스포츠는 일본 스니커즈 업체 ‘오니츠카 타이거’의 운동화들을 미국으로 수입해 높은 가격으로 재판매해 수익을 남기는 구조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1971년 부터는 바워맨이 직접 디자인한 스니커즈를 팔기 시작했고, 경쟁업체였던 독일의 아디다스와는 다르게 업계 최초로 아시아에서 값싼 비용으로 신발들을 생산하게 되었죠.

1971년, 블루리본 스포츠는 ‘나이키’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나이트와 바워맨의 기존 육상 커뮤니티 연줄에 힘입어 여러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게 되면서 해마다 매출이 배로 뛰어오르게 되었죠.

나이트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 맞춰 ‘나이키 코르테즈’ 스니커즈를 출시했습니다. 이 때부터 나이키 고유의 로고인 ‘스우시’가 운동화에 박히게 되었고 평범한 운동화가 아닌 하나의 패션 아이콘으로 여겨지게 된 이 나이키 코르테즈를 수 많은 올림픽 스타들이 앞다퉈 신게 되었죠. 참고로 이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이 스우시 로고 자체만으로도 260억달러 (약 30조원)의 수입성을 띈다고 하죠.

필 나이트의 지휘 아래 나이키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급성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나이키의 매출은 1973년 2,870만달러 (약 330억원)에서 1983년 8억6,700만달러 (약 9,970억원)로 크게 뛰었죠.

1982년, 나이트는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에어포스 1’을 출시했습니다. 당시 운동화 업계 최초로 농구선수들을 위해 발뒤꿈치 부분에 공기쿠션 ‘나이키 에어’를 집어넣으면서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운동화가 되어버리고 말죠. 현재도 해마다 수백만 켤레의 에어포스 1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필 나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과 광고계약을 맺으면서 ‘에어조던’ 브랜드를 런칭한 것이라고 하죠. 현재 에어조던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스니커즈 프랜차이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1985년, 대학농구 선수로서 NBA에 들어간 마이클 조던은 당시 나이키와 파격적인 연 50만달러 (약 5억8,000만원) 계약을 맺으면서 화제가 되었죠. 이제는 은퇴한지 14년이 지났지만, 조던은 나이키로 부터 매년 받는 로열티 비용이 무려 1억달러 (약 1,150억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1985년 3월, 에어조던 운동화는 65달러 (약 7만5,000원)의 가격에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5월, 겨우 두 달이 지났지만 무려 7,000만달러 (약 805억원)치의 에어조던들이 팔려나갈 정도로 그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나이키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하자, 필 나이트는 새로운 방향과 생각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당시 나이키 마케팅이 스포츠 스타들에게 많이 치우쳐 있었는데, 실제 나이키 운동화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로 스포츠에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하죠.

나이트는 나이키의 마케팅 방향을 제품 위주 보다는 일반 구매자들을 타게팅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 위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혁신적인 마케팅 덕분에 나이키는 30억달러 (약 3조4,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죠.

‘마케팅 천재’로 알려졌던 나이트는 199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를 통해 “우리는 운동화 사업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문화와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다”라고 까지 말하기도 했죠. 하지만 나이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인도네시아 등 해외 나이키 공장들에 대한 노동 문제가 폭로되면서 한 때 홍역을 치뤘습니다.

1998년 부터 매출이 또 다시 떨어지고 나이키는 임직원들을 내보내야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죠. 당시 CEO였던 필 나이트는 다시 한번 팔을 걷어부치고 공장 최소 연령을 수정하고 임금을 올렸으며 모니터링 상품, 공장 공기 정화, 제조 종사 공장 등의 엄격한 규칙들을 세워나갔습니다. 덕분에 여론은 다시 돌아오게 되었죠.

현재 나이키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입지를 다지면서 북미 지역에서만 62%의 시장점유율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300억달러 (약 34조5,000억원)라는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고 있죠. 필 나이트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부를 축척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재산은 현재 244억달러 (약 28조1,000억원)로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자수성가형 CEO 중 한 명으로도 알려져 있죠.

또한, 나이키 로고가 박힌 2013년식 걸프스트림 G650와 1999년식 걸프스트림 G-V 개인전용기 두 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80세가 된 필 나이트는 52년을 나이키에 헌신하다가 지난 2015년에 명예회장직에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역사상 최대의 대학기금 기부 금액 기록을 세우면서 각종 암 연구소와 보건소, 그리고 육상 및 타 스포츠 기관에도 기부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