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까지 보셨어요” 매장에 갔더니 계산기부터 들이밀며 가격을 제시하란다. 심지어 “가격을 흥정한 사실이 녹취되면 영업정지를 당할 수도 있다”라며 ‘가격 언급 시 상담 종료’라고 써 붙인 곳도 있다. 이는 휴대폰 구입의 ‘성지’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단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에 들어서면 “고객님 어떤 거 알아보러 오셨어요” “뭐 찾으세요” “가격 알아봐드릴게요” “어딜 가나 똑같아. 여기서 해요”라며 호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각종 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호갱’이 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성지 좌표’가 공유되기도 한다. 호갱 안 되려 싸게 사면 불법이라는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


호갱 안 되려 싸게 사면 불법이라는 ‘이것’은 바로 핸드폰이다. 원래 이동통신사는 소비자가 핸드폰을 살 때 공시지원금과 선택약정 중 하나를 지원한다. 공시지원금은 특정 요금제를 일정 기간 사용하는 조건으로 이동통신사가 소비자에게 핸드폰 값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또 선택약정은 사용하는 요금제를 매달 25%씩 할인해 주는 제도다.


이동통신사가 지원하는 공시지원금은 제품별로, 통신사별로 모두 다르다. 29일 갤럭시 S20+ 기준 공시지원금은 ▲SKT 42만 원 ▲KT 48만 원 ▲LG U+는 50만 원이다. 거기에 통신사가 제공하는 합법적인 추가지원금 기준은 기기값의 15%다. 갤럭시 S20+는 대개 약 7만 원 선이다.


하지만 휴대폰 판매점은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15%보다 더 많은 추가지원금을 지급한다. 이는 곧 불법지원금이다. 이 불법보조금은 판매점이 이동통신사로부터 받은 판매장려금을 토대로 마련된다. 장려금은 판매점에 지급하는 일종의 판매수수료다. 판매점은 장려금 내에서 마진을 남기고 나머지로 소비자에게 혜택을 준다. 판매점이 소비자에게 주는 불법보조금은 판매점 재량이다. 불법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판매점은 ‘핸드폰 성지’로 통하며 많은 손님을 모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핸드폰 관련 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혹시 모를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각종 은어로 핸드폰을 싸게 파는 성지 좌표가 공유된다. ‘갤S20+ ㄹㄱㄱㅂ 6개월 85욕 290000ㅎㅇ’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다. 갤럭시 S20+를 LG U+에서 기기 변경했는데, 6개월 동안 8만 5000원 요금제를 쓴다는 조건으로 29만 원을 현금 완납해 구매했다”라는 뜻이다.


또 “핸드폰을 어디서 얼마에 구입했다”라는 후기 글이나 ‘ㅇㅇㅇ지역 성지 좌표 좀요’라는 글도 많다. 혹시 모를 단속을 피하기 위해 모든 정보는 쪽지로만 공유된다. 심지어 핸드폰 진동 패턴과 같은 암호로 성지 좌표가 공유되기도 한다. 이렇게 성지에서 핸드폰을 구입하면 출고가 135만 3000원인 삼성 갤럭시 S20+도 불법지원금을 받아 30만 원 대에 살 수 있다. 카드 할인을 결합하면 더 싸게도 구입할 수 있다.

정부는 이와 같은 과도한 휴대폰 보조금을 규제하기 위해 지난 2014년 단통법을 도입했다. 이동통신사 간 경쟁비용을 줄이면 통신요금이 안정되리라 기대한 셈이다. 하지만 정책의 효과는 미미했다. 이통사는 정부의 눈을 피해 불법보조금으로 이용자를 늘렸고, 높은 요금으로 이를 보전했다.


일각에서는 “불법지원금을 받으면 100만 원짜리 핸드폰도 무료로 살 수 있다. 단통법은 모르는 사람만 지키는 법이다”라는 목소리도 높다. 또 누구는 싸게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문제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단통법이 ‘모두가 비싸게 사는 전 국민 호갱법’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SKT, KT, LG U+ 이동통신 3사에 과징금 512억 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이러한 단속에도 휴대폰 판매점에서의 불법 리베이트는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이에 단통법을 개정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단통법 이후 이통사들의 불법보조금 사례가 끊이지 않자 제도 무용론까지 확산됐다.


실제로 단통법은 불법 리베이트만 늘렸다. 또 핸드폰을 싸게 파는 행위를 불법으로 만들었다. 소비자를 위해 만든 단통법인데, 이동통신사만 매출을 올리고 소비자는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동통신사와 판매자,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