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이민을 꿈꿔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미세먼지가 싫어서, 새로운 환경에서 살고 싶어서 등 이민을 가고 싶은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최근에는 점점 늘어나는 증여세, 상속세를 피해 이민을 떠나고 싶다는 장년층 자산가들도 부쩍 늘었다. 하지만 60을 넘긴 나이의 이들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울 텐데, 어떻게 비자를 받아 이민을 간다는 것일까? 오늘은 말 그대로 돈을 투자해 이민을 떠나는 ‘투자 이민’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민 열풍이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03년에는 홈쇼핑에서 이민 상품을 판매하면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일도 있었다. 현대 홈쇼핑은 밤 11시 10분부터 80분간 캐나다 마니토바주 이민 상품을 판매했다. 당시 총 9백83 명이 1백75억 원어치를 주문해 기록을 세웠다. 당시 현대홈쇼핑 하루 매출은 25억 원대였으니, 일주일 치 매출을 단 하나의 방송으로 올린 것이다. ‘독립이민’, ‘기술교육 이민’, ‘기업 이민’ 등의 상품을 판매한 2차 방송에는 상담 신청자 3천918 명이 몰려들었다.

당시 방송에서 상담을 신청한 것은 주로 젊은 층이었다. 1차 방송 신청자 중 60%가 20~30대였고, 2차 방송에서는 51%가 30대, 11%가 20대였다. 상담 신청자들은 이민을 가고 싶은 이유로 ‘자녀 교육’과 ‘직업의 불안정’을 꼽았다.

더 이상 홈쇼핑에서 이민 상품을 판매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민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주말마다 서울 곳곳에서는 투자 이민 설명회가 열리고, 설명회장은 초등생 자녀를 둔 젊은 부부부터 퇴직한 노인까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많은 재산을 가진 자산가라는 점이다.

투자이민은 말 그대로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하면 비자를 내주는 프로그램이다. 미국 정부가 지정한 지역의 개발 사업에 리저널 센터(일종의 투자 대행 기구)를 통해 간접 투자하거나, 사업체 등에 직접 투자해 10 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는 조건으로 이민을 허가해 준다.

기존의 최소 간접 투자금액은 50만 달러(한화 약 6억 원), 최소 직접 투자금액은 100만 달러(약 12억 원)이다. 돈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전문 기술 경력자나 교수, 연구인력 등에게 가능했던 취업이민이나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치는 종교이민과 달리 투자를 통해 이민이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에 여유자금이 충분한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민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 곧 늘어날 예정이다. 미 이민 서비스국(USCIS)는 지난 7월, 투자 이민 프로그램 변경안을 최종 고시했다. 변경안은 오는 11월 21일부터 최소 투자금액이 각각 90만 달러(약 11억 원), 180만 달러(약 22억 원)로 늘어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실 이런 인상안은 이미 6차례 연기되었던 것으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부터 ‘올 상반기 중에 투자금액 인상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어 지난해 대비 올해 3배에 가까운 인원이 몰렸다”고 전했다. 금액이 두 배 가까이 인상되기 전에 ‘막차’를 타고 미국 이민에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몰렸다는 이야기다.

투자 이민 설명회에 몰려든 사람들 중에는 자녀가 이미 해외 유학 중이거나 취업에 성공한 이들이 많다. 부모가 이민에 성공해 영주권을 취득할 경우 자녀의 교육비가 절반 이하까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처분해 투자 금액으로 사용하고 해외 거주 중인 자녀들과 가까이 살려는 노년층 부모들도 있다. 일부는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세금만 늘어나는’ 상황에 실망해 미국행을 택한다.

상속세가 아예 없고 법인 설립이나 운영에 제도적 뒷받침이 잘 되어있는 싱가포르로 떠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영주권을 받으려면 신생 기업이나 펀드에 250만 싱가포르 달러(약 22억 원)을 투자해야 한다. 또한 적어도 연간 433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사업체를 운영한 경험도 심사 기준이니, 미국보다 조건이 조금 더 까다롭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싱가포르로 이민을 떠나려는 기업가, 자산가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한 자산 리서치 업체가 내놓은 ‘부의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천 명의 자산가가 싱가포르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