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귀환’, 두 단어의 조합은 참으로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다. “부상에서 회복한 유명 스포츠 스타의 복귀전”, “시리즈 영화로 명성이 자자한 감독의 새로운 속편”, “활동을 중단한 뮤지션의 컴백 앨범” 등과 같은 문구에 독자들이 열광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람보르기니 쿤타치’ 역시 그런 존재다. 국내에선 ‘카운타크’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진 이 전설적인 모델은 지난 50년간 전 세계 슈퍼카 마니아들에게 로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모델이 새롭게 돌아온다는 소식은 느슨해진 슈퍼카 시장에 긴장감을 주기 충분하다.

오늘날의 람보르기니를 존재케 한 전설의 귀환, 이번 콘텐츠에서는 50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모습을 드러낸 ‘람보르기니 쿤타치 LPI 800-4’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쿤타치의 시작 LP500

람보르기니 쿤타치는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람보르기니의 콘셉트카로서 ‘LP500’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던 쿤타치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성능과 디자인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LP500에는 최고출력 446마력을 뿜어내는 ‘5.0L V12 엔진’이 장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쐐기를 연상케 하는 공기역학적 디자인까지 적용되어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최고조에 다다르던 1970년대에 만들어진 자동차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이었고, 완성도 역시 뛰어났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은 위로 열리는 ‘시저 도어(Scissors Doors)’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치 가위처럼 움직이는 이 독특한 도어는 기존 슈퍼카의 단점인 ‘승하차의 불편함’을 획기적으로 해결해 주었다.

실제로 LP500을 비롯한 동시대 슈퍼카의 설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측면의 골조가 운전석보다 높게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다. 경량화와 구조강성을 위해 승하차의 용이함을 어느 정도 타협한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슈퍼카 오너들은 타고 내릴 때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반면에 LP500은 위로 열리는 시저 도어를 채택해, 승하차를 위한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더불어, 람보르기니만의 유니크한 스타일도 누릴 수 있었다. 이는 LP500의 양산형 모델인 ‘쿤타치 LP400(이하 LP400)’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람보르기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LP500에서 시작된 람보르기니의 아이덴티티는 시저 도어뿐만이 아니다. 누가 봐도 람보르기니의 특징인 ‘쐐기형 차체’와 ‘직선 위주의 스타일링’ 역시 LP500에서 시작되었다. 즉, LP500은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관통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LP500에 적용된 모든 것이 쿤타치로 이어지진 못했다. 5.0L V12 엔진을 장착한 LP500과 달리, 양산형 모델인 LP400은 이전 세대 모델인 ‘미우라’에 적용되었던 ‘3.9L V12’을 탑재했다.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새로운 엔진을 양산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LP400의 성능이 부족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성능 개선에 엄청난 공을 들인 덕분에 LP400은 ‘페라리 288GTO’이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이는 곧 LP400의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LP400의 상업적 성공에 힘입은 람보르기니는 1982년, 드디어 4.8L V12 엔진을 탑재한 ‘쿤타치 LP500 S’를 출시하게 된다. 2%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면서, 쿤타치는 비로소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1985년에는 배기량을 5.2L까지 늘린 ‘쿤타치 LP500 콰트로발롤레(이하 LP500 QV)‘가 출시된다. 최고출력 455마력, 최대토크 50.1kgf·m를 뿜어내는 LP500 QV는 페라리 288GTO에게 뺏겼던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재탈환하는 데 성공해, 람보르기니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시대를 뛰어넘은 아이콘, 쿤타치

‘가장 빠른 양산차’라는 타이틀을 가진 슈퍼카답게, 쿤타치는 80년대 슈퍼카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대표적으로 80년대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는 주인공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쿤타치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쿤타치는 여러 슈퍼카 브랜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으며,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 진리이다. 특히 ‘페라리 288GTO’나 ‘포르쉐 959’와의 경쟁구도는 지금도 수많은 슈퍼카 마니아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한편, 국내에 쿤타치가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카데미과학에서 제조한 프라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일본식 표기명인 ‘카운타크(カウンタック)’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람보르기니 특유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80년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미우라’에서 시작되어 ‘쿤타치’로 발전한 람보르기니 플래그십 슈퍼카 헤리티지는 이후 ‘디아블로’와 ‘무르시엘라고’ 그리고 ‘아벤타도르’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 어떤 모델도 쿤타치만큼의 위상을 보여주진 못했다.
이는 그만큼 쿤타치가 시대를 뛰어넘은 람보르기니의 아이콘임을 증명한다. 아울러, 단순히 고성능만 가진다고 해서 슈퍼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사로잡는 ‘감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전설의 귀환 쿤타치 LPI 800-4

새롭게 태어난 쿤타치 LPI 800-4(이하 LPI 800-4)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쿤타치의 출시를 기념하는 모델이다. LPI 800-4는 단 112대만 한정 생산되었는데, 이는 쿤타치 최초 개발 당시 사용된 내부 프로젝트명인 ‘LP112’를 의미한다.

LPI 800-4의 디자인은 과거의 쿤타치를 재해석하여 다듬어졌다. 대표적인 요소로는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쿤타치(countach) 레터링’, 길고 낮은 직사각형 모양의 ‘헤드램프’,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한 ‘테일램프’, 육각형 테마의 ‘휠 아치’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날렵하게 기울어진 앞 유리와 가변형 리어 스포일러로 구현한 측면 실루엣은 초기형 쿤타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쿤타치의 아이덴티티인 상어 아가미 그릴 장식도 빠지지 않았다.

조금 아쉬운 점은, 쿤타치의 차밍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팝업 헤드램프’가 빠진 것이다. 충돌 안전성과 공기역학적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인테리어는 1970년대 특유의 대담한 스타일과 낙천성을 드러내는 ‘스퀘어 모티브’를 중점으로 한다. 특히 컴포트 시트와 대시보드를 마감한 가죽에서는 클래식하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배어 나온다.

한편, 센터패시아 정 중앙에 마련된 8.4인치 HDMI 센터 터치스크린은 ‘커넥티비티’와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한다. 이는 LPI 800-4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데에만 집중한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세계 최고의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의 모델답게, 차량의 스펙은 상상을 초월한다. ‘람보르기니 시안 FKP37’과 동일한 6.5L V12 엔진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더해진 LPI 800-4의 파워트레인은 무려 78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순식간에 뿜어낸다.

더불어 LPI 800-4는 모든 차체 패널을 탄소 섬유로 제작해, ‘경량화’와 ‘비틀림 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 실제로 LPI 800-4의 건조중량은 고작 1,595kg에 불과하다. 가격은 31억에 달했다.

정말 아쉽게도 LPI 800-4는 현재 112대가 모두 완판된 상태이며, 내년 1분기부터 전 세계 고객들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쿤타치의 헤리티지를 재해석한 한정판 모델이라는 점에서, LPI 800-4의 가치와 희소성을 해마다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카운타크’라는 이름으로 80년대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쿤타치, 독자 여러분에게 쿤타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댓글을 통해 그 시절 쿤타치에 대한 기억을 서로 나누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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