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리를 걷다 보면, “저건 대체 어떻게 주차를 해야 하나?”싶은 대형 SUV를 마주할 수 있다. 사실 팰리세이드 정도만 돼도 주차가 벅찬 건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 소개드릴 모델은 한 마디로 궤를 달리한다. “어떻게 주차하지?”가 아니라, “이걸 우리나라에서 탈 수 있어?”라는 생각부터 드는 ‘초대형 SUV’이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몹집 하나만으로 다른 프리미엄 SUV를 오징어로 만들어버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지도와 사이즈 하나만큼은 그 어떤 모델에도 뒤지지 않는 차! 아울러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헬리콥터 다음으로 많이 박살 나는 차! 천조국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오늘의 주제는 바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다.

급조해서 처음나온 에스컬레이드

전장 5,380mm, 휠베이스 3,071mm, V8 6200cc 엔진, 최고출력 426마력, 최대토크 63.6㎏f·m

에스컬레이드는 단순히 숫자만 나열해도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차다. 제너럴모터스의 플래그십을 맡는 모델답게, 가격도 억 소리 나게 비싸다. 실제로 국내 판매 기준, 5세대 에스컬레이드의 판매가격은 무려 1억 5,357만 원에 달한다.

이처럼 워낙 임팩트가 강력한 모델이다 보니,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로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본국인 미국에서는 ‘톱스타들이 타는 차’라고 불리며, 성공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에스컬레이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차> 통계에서 꾸준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드가 처음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에스컬레이드는 경쟁 브랜드를 따라잡기 위한 ‘급조품’에 불과했습니다. 한 마디로 ‘후발주자’였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자동차 시장에는 ‘럭셔리 브랜드’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와 같은 고급 SUV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질 수 없다는 듯이,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도 자사의 대형 SUV를 고급화하기 시작했다.

첫 포문을 연 것은 ‘링컨 네비게이터’였다. ‘포드 익스페디션’의 플랫폼과 차체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이 모델은 정말 본격적으로 만든 대형 럭셔리 SUV였다. 디자인 차별화를 위해 전용 부품을 사용하고 프리미엄 이미지에 걸맞은 차음 소재와 카펫을 적용하는 등, 정말로 엄청난 공을 들인 모델이었다.

링컨 네비게이터의 등장은 고급 SUV 시장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곧 경쟁사인 캐딜락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캐딜락은 고급 SUV 라인업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결국, 캐딜락이 성급한 결정을 하는 원인이 된다.

1998년 8월, 캐딜락은 캘리포니아 몬터레이에서 열리는 ‘콩쿠르 드 엘레강스’에서 1세대 에스컬레이드를 공개한다. 온갖 럭셔리카가 모이는 행사에서 공개한 모델인 만큼, 에스컬레이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하지만, 급조된 에스컬레이드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포드 익스퍼레이션을 완벽하게 고급화한 링컨과 달리, 캐딜락은 ‘GMC 유콘’이라는 모델의 세부적 디테일만 약간 변경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랜저의 디자인을 약간 바꾼 ‘아슬란’처럼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다.

결국 1세대 에스컬레이드는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단 2년만 판매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심지어 생산 대수는 불과 5만 대에 불과했다. 이는 지금도 캐딜락의 최대 실수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에스컬레이드, 화려한 전설의 시작

1세대 에스컬레이드에서 참패를 맛본 캐딜락은 2세대 에스컬레이드 개발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실제로 ‘GMC 유콘’의 가지치기 모델이었던 1세대 에스컬레이드와 달리, 2세대 에스컬레이드는 플랫폼 개발과정부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뼈대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바꾼 것이다.

가장 크게 공을 들인 부분은 ‘디자인’이었다. 당시 캐딜락은 ‘Art and Science’ 디자인 테마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대담하고 각진 디자인을 구현했다. 지금의 에스컬레이드를 상징하는 ‘각’이 바로 이때 탄생했다.

아울러 옵션 구성도 호화로웠다. 거대한 20인치 크롬 휠과 어댑티브 서스펜션, 전·후 좌석 열선 및 통풍 기능, 냉온 컵홀더, 2·3열 모니터 등, 2000년대 초반 자동차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풍성한 편의사양을 갖추었다. 더불어, 이탈리아 보석 명품 브랜드 ‘불가리’에서 제작한 아날로그시계까지 적용되었다.

소비자의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었다. 2세대 에스컬레이드는 출시되자마자 ‘JD 파워’가 선정한 <가장 매력적인 럭셔리 SUV>에 이름을 올렸고, 같은 해 무려 10개가 넘는 상을 수상하며 대형 럭셔리 SUV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2세대 에스컬레이드는 톱스타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에스컬레이드의 거대한 사이즈와 격조 높은 품격은 자신을 과시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었다. 스타일을 중시하는 힙합 뮤지션은 물론, ‘샤킬 오닐’과 ‘타이거 우즈’와 같은 스포츠 슈퍼스타들도 애용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판매된 에스컬레이드도 바로 2세대 에스컬레이드다. 같은 시기 국산 SUV 가운데 가장 큰 모델이 ‘테라칸’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에스컬레이드는 존재감만으로도 국내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숏바디 버전만 정식 수입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숏바디 버전도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굉장히 크다. 이게 말로만 들으면 체감이 잘 안될 텐데,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에 에스컬레이드가 들어갈 수 있는 기계식 주차장은 없다고 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2세대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에스컬레이드는 여러 번의 진화를 거치며 꾸준히 발전해 왔다. 덩달아 가격도 엄청나게 올랐다. 2세대 에스컬레이드의 가격이 약 8,000만 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두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그런데도 “없어서 못판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에스컬레이드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갈 것이다.

이와 같은 인기의 요인은 에스컬레이드가 가진 ‘상징성’에 있다.

에스컬레이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의 플래그십 모델이면서, 미국 대통령의 보디가드와 같은 의전 차량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메리칸드림’을 대표하는 자동차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그랜저’가 ‘성공의 상징’인 것처럼 말이다.

즉, 미국 사회에서 에스컬레이드는 곧 성공을 의미한다. 아울러,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상징성을 가진 에스컬레이드를 단순한 럭셔리 SUV로 치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한편, 미국 힙합을 논할 때 에스컬레이드를 빼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닥터 드레’, ‘스눕독’, ‘에미넴’ 등, 유명한 힙합 아티스트는 모두 에스컬레이드를 소유하고 있다. 특히 닥터 드레는 전용 튜닝까지 할 정도로 에스컬레이드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에스컬레이드가 힙합 가사에 등장한 횟수는 무려 500회가 넘는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에스컬레이드에 대한 래퍼들의 로망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에스컬레이드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상 미디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힙합 뮤직비디오는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종횡무진으로 활약한다. 주인공도 타고, 경찰도 타고, 가끔 악당도 탄다. 이젠 안 보이면 섭섭할 정도다.

앞으로 그 어떤 대형 럭셔리 SUV가 등장한다 해도, 에스컬레이드의 명성을 뛰어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특유의 ‘빅 사이즈’ 감성은 오직 에스컬레이드에서만 누릴 수 있기에, 톱스타들의 각별한 ‘에스컬레이드 사랑’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연비 따윈 생각하지 않는 마초 감성의 가솔린 엔진, 대통령 의전차량에 버금가는 럭셔리함, 그 누구도 범법할 수 없는 웅장한 크기, 그 어떤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정답은 바로 에스컬레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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