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외 알트코인도 관심
이더리움 500만 원 돌파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유치원생 때 엑셀 마스터

[SAND MONEY] 가상화폐 시장이 다시 관심을 받아 3년 전보다도 더욱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비트코인 외에 다양한 종류의 알트코인들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 시가총액 2위의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은 얼마 전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이더리움의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억만장자 반열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을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최근 가상화폐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3년 전 폭락장을 경험해 그 이후 몇 년간 완전히 죽은 시장인 줄 알았지만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열기가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각국 정부가 유동성을 완화시키면서 풀린 돈이 흘러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때 바닥을 쳤던 비트코인 개당 가격은 무려 8,000만 원 가까운 기록을 세웠다. 각국 정부의 규제 움직임과 코인베이스 상장 후 차익실현 물량으로 인해 한때 5,500만 원 수준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반등해 현재 7,000만 원 전후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편 가상화폐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은 알트코인 중에서도 대표주자이다. 그런데 최근 이더리움이 계속해서 사상 최고가 기록을 내는 등 성장세를 보여 투자자들의 관심을 이끌고 있다. 4월 한 달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3% 가까이 하락한 반면 이더리움 가격은 40% 이상 상승했다.

특히 지난 5월 10일에는 이더리움의 개당 가격이 505만 원을 기록했다. 이더리움이 국내에서 500만 원을 뛰어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더리움은 지난해 말까지 81만 원 대였는데 올해 들어 6배 이상 급증해 사람들의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해나가면서 이더리움의 시가총액은 한화 503조 원으로 불어났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을 제외하고 그다음으로 큰 금액이다. 한편 이처럼 이더리움의 가치가 크게 상승하게 되면서 해당 코인의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94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비탈릭 부테린은 6살 부모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는데 유치원생 때 이미 엑셀을 마스터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정도였다. 캐나다로 이주한 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영재 프로그램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남들과는 다른 뛰어난 재능과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별종 취급을 받았다. 이에 따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어린 시절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으며 수학·경제·컴퓨터·프로그래밍 등에 두각을 드러냈다. 비탈릭은 그 당시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평균 75% 정도의 평범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걸까”라고 고민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 천재’로 불리던 비탈릭 부테린, 그가 암호화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비탈릭은 처음에는 가상화폐에 대해 실질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컴퓨터 공학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재차 듣자 흥미를 갖고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10대 무렵 비탈릭 부테린은 정부규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 가상화폐가 탈중앙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상당한 매력 포인트가 되었었다. 비탈릭은 가상 자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토큰을 채굴하거나 비트코인을 매입할 만큼의 경제적 능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마음이 급했던 그는 급여를 비트코인으로 주는 일거리를 찾다가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기사 한 건당 비트코인 5개를 수령했다. 경험을 쌓은 그는 2011년 비트코인 매거진을 창간했다.

비탈릭 부테린이 가상화폐에 본격적으로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지지가 컸다. 그의 아버지는 비탈릭에게 “학교를 계속 다니면 안정적인 직장이 기다리겠지만, 그만두고 가상화폐에 도전할 경우 더 큰 기회가 기다릴 것이다”라는 조언을 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대학교를 자퇴한 뒤 암호화폐에 깊이 빠져들었고, 2년 뒤인 19세에 결국 이더리움 설계도를 만들어냈다. 그 후 2년 뒤, 비탈릭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개발해 이를 공식 출범시켰다.

천재적인 재능을 이용해 새로운 가상화폐를 만들어낸 비탈릭 부테린, 그는 이더리움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자산 가치 역시 어마어마한 규모로 늘어났다. 미국의 포브스에 따르면 올해 27세에 불과한 비탈릭 부테린은 이더리움의 가격 폭등으로 재산이 10억 달러(한화 1조 1,100억 원)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그는 최연소 억만장자에도 등극하게 됐다.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미국 내에서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추종하는 팬들이 생겨났다. 한편 그는 자신이 보유한 이더리움을 이용해 다른 코인에 투기하지 않냐는 의혹도 종종 받았지만, 본인의 포트폴리오 중 90% 이상이 이더리움이라는 사실을 밝혀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한편 비탈릭 싱가폴을 거쳐 현재는 스위스에서 거주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스위스를 택한 이유는 많은 가상화폐 개발자들의 뜻과 마찬가지로 스위스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암호화폐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때 암호화폐를 만들어낸 천재소년의 차후 행보는 어떻게 될지, 그가 만들어낸 가상화폐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계속해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