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은 버려주세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계산할 때, 가게에서 물건값을 결제할 때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다. 이런 손님이 많다 보니 센스 있게 “영수증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고 먼저 묻는 점원들도 느는 추세다. 종이 영수증이 자꾸 쌓이면 지갑이 뚱뚱해지는 데다, 카드 결제 문자나 카드사 앱에서 사용내역 확인도 가능하기 때문에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의외로 부자들은 이 천덕꾸러기 영수증을 생각보다 열심히 모은다는 소식이다. 대체 모아두면 뭐가 좋길래 부자들은 영수증을 챙기는 것일까?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지난해 일반인 1030명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습관 등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시행하고, ‘실천해야 할 자산관리 습관’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돈을 모으는 데 방해되는 것으로 ‘충동구매 등 불필요한 지출’을 꼽았다. 돈을 모으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묻는 항목에서도 ‘안정적인 직장’이나 ‘자신의 의지’에 앞서 ‘검소한 소비습관’이 1위를 차지했다.
이 리포트에는 자산 규모 1억 원 이하에서는 ‘할인 혜택이나 사은품 때문에 물건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80%에 달한 반면 자산 10억 원 이상 계층에서는 64%에 그쳤다는 내용도 있었다. 자산이 많은 사람은 할인 혜택이나 사은품에 이끌려 불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확률이 낮은 편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조금 재미있는 결과도 있었다. ‘평소 영수증을 챙긴다’고 답한 비율이 월 소득 200만 원 이하에서는 65%에 불과했지만, 월 소득 1천만 원 이상 계층에서는 87%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영수증과 소득 계층의 상관관계를 보여줄 뿐, 정확한 인과관계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영수증을 잘 챙기는 꼼꼼한 성격 때문에 고소득 직장을 갖게 된 것인지, 영수증을 통한 자산관리로 돈을 불리게 된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파악하고, 나아가 현명한 소비습관을 들이는 데 영수증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자로 오는 카드 사용 내역이나 카드사 어플을 활용하면 안 되냐고 반문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드 사용 내역에는 내가 어떤 물품들을 샀는지 나오지 않는다. 어떤 가게에서 얼마를 결제했는지는 알 수 있지만, 무엇을 사는 데 그만 한 돈을 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드럭 스토어에서 과자와 핸드크림을 함께 샀다면 과자는 식품 지출로, 핸드크림은 화장품 지출로 보내야 하는데 문자만 봐서는 그러기가 힘들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금으로 결제한 경우에는 카드 사용 문자가 오지 않는다. 현금을 사용했다면 현금 영수증을 받아와야지만 무엇에 얼마를 썼는지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당신이 사업자라면, 열심히 영수증을 챙겨두어야 할 이유는 한 가지 더 늘어난다. 바로 ‘경비처리’를 위해서다. 물론 경비로 사용하지 않은 걸 영수증으로 경비처리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정말 경비로 사용한 금액이라 할지라도 세금계산서, 계산서, 신용카드 매출전표, 현금영수증 등의 적격증빙이 없다면 비용으로 처리하지 못하거나 증빙불비 가산세를 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늘 영수증을 챙겨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등록된 사업용 신용카드로 결제했다고 해서 모두 경비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등록된 사업용 신용카드로 결제해야만 경비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사업용 카드로 결제했든 개인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든 사업에 사용한 비용이고 카드 매출 전표를 가지고 있다면 필요 경비 처리가 가능할 뿐 아니라 매입세액 공제도 받을 수 있다.
영수증을 챙기는 건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다. 사실 종이 영수증을 만지면 몸에 좋지 않다는 문제 제기도 꾸준히 있어왔다. 영수증 용지의 발색촉매제로 사용되는 비스페놀 A는 환경호르몬으로, 내분비계 장애추정물질로 지정되어 있다. 말 그대로 ‘종이’ 영수증이기 때문에 자원이 소모된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자 영수증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몇몇 브랜드 매장에서는 이미 전자 영수증을 발급하고 있지만, 아직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브랜드마다 별도의 앱을 설치해야 해서 종이 영수증보다 오히려 귀찮고 번거롭다는 반응도 있다.
지난 9월 10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전자 영수증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발제를 맡은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임성종 교수는 “현행 법규에서 영수증을 반드시 종이의 형태로 발급하도록 규정한 조항은 없이 때문에 전자 형태로의 영수증 발급도 가능하다”면서도 “전자적 형태의 영수증 발급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 또한 없다”고 지적했다. 전자 영수증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카드 결제 기능만 갖춘 단말기를 판매·매출·재고관리 솔루션을 연동한 단말기로 교체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에 들어갈 비용은 3조 6천억 원 정도로,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전자영수증을 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는 종이 영수증을 받아 가계부를 정리한 뒤 깨끗이 손을 씻거나, 카드 결제 문자를 활용하면서 세부 내역은 스스로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본인의 소비패턴을 파악하고 자산관리에 반영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개인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으니, 영수증을 버리고 싶다면 반드시 찢어서 폐기하는 것도 잊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