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펴보지 않았던 책을 꺼냈다가 오래전에 끼워둔 비상금을 발견한다면? 물론 매우 기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돈이 현행 화폐가 아닌, 2007년 이전에 발행된 구권일 경우에는 어떨까? 매우 반갑긴 하지만, 사용 가능 여부를 몰라 난감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현행 지폐보다 크고 흐릿한 이 구권 지폐, 과연 사용이 가능한 걸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방금 외국 손님이 이거 꺼내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물 속 사진에는 꼬질꼬질 때탄 옛날 천 원권 한 장이 올라와 있다. 게다가 해당 지폐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그’ 옛날 지폐가 아니다. 75년부터 83년까지 쓰던, 정말 오래된 천 원권 지폐였던 것이다. 해당 게시글 작성자는 “내가 국민학교 때 쓰던 구권”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재의 천 원권 지폐는 두 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오천 원 권은 72년부터 4 번, 만 원권은 73년부터 총 다섯 번 바뀌었다. 2007년 새 지폐가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장난감 돈 같다”, “도저히 돈 같지 않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색깔이 종전에 비해 진해진 데다, 가로·세로 폭이 모두 줄어 크기가 작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권은 왜 신권으로 교체된 것일까. 2005년 박승 당시 한은 총재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위조지폐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부터 매년 평균 50%씩 증가하던 위조지폐가 2005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4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규격이 너무 커서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지갑에 들어가지 않으며, 색상이 어두워 세련미가 떨어지고 종이의 질도 나빠 사용 가능한 연수가 짧다는 언급도 있다.

또한 박 당시 한은 총재는 자동 인출기(CD)는 기계 교체 없이 카트리지와 센서만 교체하면 되며, 자동 입출기(ATM)은 전부 교체해야 하고, 신구 은행권이 병용되는 기간 동안에는 구권 소지자의 ATM 사용이 가능할 것임을 밝혔으며, 구권은 영구히 사용하고 신·구권 교환도 무제한 허용된다고 덧붙였다.

박승 당시 총재의 말대로, 구권은 액면가 그대로 시중 은행에서 교환이 가능하다.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원화”권종은 유통 중지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이 아닌 시중에서 사용도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위폐의 우려성 등을 이유로 시중에서의 강제 통용력을 무조건 적용시키지는 않기 때문에, 예전 화폐를 받지 않으려는 가게가 많을 것이다. 은행에서 교환한 후 쓰는 것이 훨씬 속 편할 거라는 이야기다.

단, 62년 화폐 개혁 전의 화폐(환, 전)은 교환도, 사용도 불가능하다. 보관 상태나 희귀성에 따라 화폐 수집상에게 가져가면 어느 정도 값을 쳐줄지도 모르지만, 원 대신 사용은 안 된다.

구권을 써도 된다니, 어쩌다 옛 지폐를 발견한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권에 관련된 미심쩍은 일들도 많이 있다. 전 국회의원 박상은 씨는 수상한 구권뭉치를 잔뜩 소지하고 현금을 지불할 일이 있을 때 이 돈을 사용해, 사기 대출 연루 가능성을 의심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 씨는 삼성동 아파트 전세 계약 시 전체 금액 중 1억 4천만 원의 자금을 구권 화폐로 마련해 의혹을 사기도 했다.

현재 화폐의 액면금액이 너무 커서 비효율적이니 화폐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에는 디자인과 제작 방식뿐만 아니라, 화폐 단위 자체를 변경(리디노미네이션) 하자는 것인데, 이 경우 단순 디자인 변경보다 큰 혼란이 올 가능성이 크다. 유로화의 선례를 따라 10년 이상 장기간 교환이 가능토록 하고 구권의 출처를 묻지 않아야 리디노미네이션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 같은 화폐개혁 요구에 대해 “현재 대내외 상황이 엄중하므로 리디노미네이션은 검토도, 추진도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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