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국내 픽업트럭 판매가 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선 이 차가 화물차로 분류되다 보니, 연간 자동차세가 생각보다 저렴하다. 판매사에서도 이 점을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고급 픽업트럭은 가격이 1억 원에 육박하는 만큼, 현행 자동차세는 ‘불필요한 세금 혜택’이라고 지적했다. 대체 픽업트럭 자동차세가 얼마길래 이러는 걸까? 함께 살펴보자.
① 3만 원이 채 안되는 세금
저렴한 자동차세, 원인은 ‘제도’에 있었다. 이 달(2월) 7일부터 한국GM이 판매하는 GMC 시에라는 차 가격이 9350만~9500만 원이다. 한국GM은 이 차를 프리미엄(고급) 픽업트럭으로 홍보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차량 가격, 세금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GMC 시에라는 1년에 2만 8500원만 내면 된다. 현행 국내 규정에 따르면, 화물용량이 1000㎏ 이하인 비영업용 화물차는 한 대당 연 세액이 2만 8500원으로 고정돼 있다.
국내 자동차세 규정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만약 차량이 비영업용 승용차 라면, 1000㏄ 이하는 ㏄당 80원, 1000~1600㏄는 ㏄당 140원, 1600㏄ 초과는 ㏄당 200원의 자동차세를 낸다.만약 배기량 6162㏄의 시에라가 비영업용 ‘화물차’가 아닌, ‘승용차’로 분류되었다면 1년 자동차세가 123만 2400원이다.
GMC 시에라 외에 국내에 판매 중인 다른 픽업트럭은 어떨까? 먼저 6350만~7990만 원인 포드 레인저는 화물차로 분류돼 2만 8500원의 자동차세만 낸다. 1996㏄ 배기량을 갖추고 있는 레인저가 승용차였다면 39만 9200원을 내야 한다.
8130만 원인 지프 글래디에이터(배기량 3604㏄) 역시 승용차 세금(72만 800원)이 아닌 화물차 세금이 매겨진다. 배기량 3649㏄인 쉐보레 콜로라도는 승용차일 경우 72만 9800원을 내야 한다.
② 덩칫값 못하는 건 자동차세 말고 더 있어
화물차로 분류되는 픽업트럭, 이슈는 자동차세 뿐만이 아니였다. 픽업트럭은 개별소비세(차 가격의 3.5%)와 교육세도 면제된다. 취득세 역시 승용차(7%)에 비해 낮은 5%다. 실제로 9500만 원짜리 시에라의 취득세는 475만 원으로, 차 가격이 2000만 원 이상 저렴한 승용차보다 적다.
레저 인구 증가와 함께 국내에서 픽업트럭은 판매량이 크게 뛰었다. 국산 모델인 렉스턴 스포츠(쌍용차)의 주도아래 국내 픽업트럭 시장은 총 5종이 있다. 한국GM은 GMC 시에라와 쉐보레 콜로라도를 판매하고 있다. 포드와 지프도 각각 레인저(와일드트랙·랩터 등 2종), 글래디에이터라는 이름의 픽업트럭을 판매한다.
③ 용도에 맞는 변경이 필요해 보인다
픽업트럭은 주로 보통 캠핑, 서핑, 바이크 등 레저 활동에 활용된다. 이 차에 대한 별도 분류가 없는 국내에선 화물차로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픽업트럭을 파는 회사들은 화물차로 설명하지 않고, 고급차로 포장해 마케팅한다. 실제로 GMC 시에라의 국내 출시 행사장에서 로베르토 럼펠 한국GM 사장은 시에라에 대해 “(시에라는) 프리미엄, 럭셔리차를 경험하고 싶은 소비자에 ‘진정한 아메리칸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차다”라고 소개했다.
한편,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완성차 브랜드들이 픽업트럭을 ‘짐차’가 아닌, 레저에 특화된 아웃도어차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용도에 맞는 자동차 분류와 과세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픽업트럭이 보편화 된 미국의 경우, 이런 픽업트럭을 SUV(스포츠유틸리티차)와 묶어 화물차가 아닌 경(Light) 자동차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분류 체계를 정비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 앞으로 라인업은 더 늘어난다는데
국내에서 픽업트럭 자동차세 이슈는 꽤 오래 전에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 무쏘 스포츠(쌍용)가 출시되었을 때도 언론과 소비자들은 자동차세에 대해 주목했다. 시간이 오랫동안 지나다보니 어느새 픽업트럭 자동차세는 날씨가 추우면 꺼내입고 따뜻하면 넣어두는 패딩처럼 되어 버렸다. 잠잠하다가도 신 차만 나오면 말이 나온다. 사실 이제와서 세금을 올리면 생계형으로 픽업트럭을 운행하는 사람들만 타격을 입을 듯한데, 자동차 과세제도를 배기량이 아닌 차 가격에 맞게 매기는 건 어떨까?